추상화와 형이상학

2021. 4. 23. 20:12시민개발자

추상화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글(2021.04.06 - [시민개발자] - 추상화, 인공지능, 업무혁신)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관념적'이란 표현과 '추상화'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복습차원에서 되새겨 본다면, '추상화'는 공통된 속성을 뽑아서 새롭게 그 상(像, image)를 그려내는 매우 고도화된 재창조 작업이지요. 공통된 속성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뽑아내는 사람의 '해석'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해석과정이 예술의 본질이란 주장이 등장하게 된거죠.

 

미술의 역사에 바로 기계와 기술의 발전이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우리가 잘 아는 카메라가 그런 변화에 셔터를 누른거죠.

 

이 글을 잘 읽었으면 지금 쓰는 글은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추상화를 '형이상학'이란 표현을 덮어씌우면서 갖춘 편견으로 이해를 보류하는 분들이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형이상학'을 준비해봤습니다.

 

철학인지 윤리인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 '형이상학'적인 고민에 빠졌습니다.

 

형이상학, 이 단어를 앞에두고 정말 나는 뭘 모르는 지 도무지 모르겠다.

형이상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한자로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고 하고 상대되는 말로 형이하학(形而下學)이 있습니다.

이 둘을 공통하는 단어는 '형(形)'이고 가르는 기준도 '형(形)'입니다.

 

우리말로 풀어보면 쉬울 수 있습니다.

 

모양 위에 있는 것을 다루는 학문 vs 모양 아래에 있는 것을 다루는 학문

 

따라서 형이상학은 형이하학을 전제로 합니다.

 

다시 말해 모양 안에서 감각을 통해 확인이 가능한 것을 먼저 인식하고 그 나머지로서 존재하는 무엇이 가능하지요.

 

이 단어는 '주역'에 나오는 표현에서 빌어왔습니다. 서양의 'Metaphysics'를 번역하기 위해서요.

 

"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라는 표현이 바로 그건데, 풀이해보면 '모양으로 볼 수 있는 위에 있는 걸 일컬어 도라고 하고 모양으로 볼 수 있는 아래의 것을 그릇이라고 일컫는다' 정도 되겠습니다.

 

주역의 계사에 나오는 이 표현은 Metaphysics와 사실 살짝 다릅니다. 서양의 'Metaphysics'는 아리스토텔레스가 'Physics'를 서술하고 그 다음에 물질의 세계가 아닌 부분을 정리하면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죠.

 

'그릇(器)'은 '도(道)'가 발현되어 그릇에 담긴 모양을 뜻합니다. 쓰임새에 맞게 모양이 드러나기 마련이죠.

 

따라서 공통된 속성을 뽑아내는 걸 뜻하는 '추상화'와 '형이상학'은 사실 서로 헷갈릴 주제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에 대한 설명이 형이상학이 바라보는 대상입니다.

 

'사랑', '우정', '정의', '명예' 등과 같이 삶의 비물질적이지만 사람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 과연 무엇인가? 정말 존재하는가? 등등이 형이상학의 관심입니다.

 

"물질로서 형체를 갖게 되어야 세상은 구현되는 가"에 대해서 최근 메타버스(Metaverse)는 형이상학적이면서도 형이하학적인 결합을 갖고 있습니다.

 

역시 언제고 기회가 닿으면 떠들 주제이겠습니다만...

 

'악성댓글': 유물론을 해체하는 형이상학이 형이하학을 지배하는 방증

악성댓글 또는 무례함 등은 형이상학의 대상입니다. 누군가가 욕을 적어 두면 욕이 나를 때리는 것이 아니라 욕에 담기 내용이 내 뇌를 자극해서 얼굴이 붉어지거나 화가나서 심장이 빨리지는 등의 영향을 끼칩니다.

 

그저 기호가 몇개 조합된 아주 조악한 것에 불과한데 심리적으로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실제 신체의 변화가 오게 됩니다.

 

그 글을 모르는 이에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을 하찮고 쓸모없는 그런 글에 굳이 감정을 담아서 나를 해칩니다.

 

장자는 '빈 배(虛舟)'에 비유해서 이러한 것들을 설명합니다.

 

사람들이 배가 와서 부딪히면 그 부딪힌 사실은 동일한데 비어 있는 배가 와서 부딪히면 그런가 하지만 사람이 타고 있으면 '눈깔이를 어디다 두고 있냐?'며 화를 낸다는 것이죠. 사람이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동일한 사건이 해석으로 진화하여 내 감정과 내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빈 배가 와서 부딪히듯 대하면 나는 내 삶을 잘 지킬 수 있다는 거죠.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 공부가 필요하겠습니다.

 

이야기가 살짝 다른 곳으로 새고 있지만, 이렇듯 형이상학과 추상화는 헷갈릴 것도 아니고 서로 큰 관계가 없습니다. 굳이 추상화라는 작용은 형이상학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정도라고나 할까요?

 

뭐 블로그에 올리는 잡문 따위이다보니 읽는 분이 잘 걷어가면 그걸로 되었다 생각하고 글을 줄입니다.

 

명심하세요. 이 글의 주제는 '형이상학'과 '추상화'는 헷갈릴 게 전혀 없다는 겁니다. 

 

아신 분들은 시간만 낭비하셨을 수 있고 시간을 잘 때우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여러분의 몫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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