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흐른다 - "판타 레이"

2023. 9. 11. 09:06내 서재

저자인 민태기 박사는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선배인데, 매달 시험이 끝나고 나면 학교에서 게시해놓은 학년별 석차를 통해 접한 이름이다. 오랜 기억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거의 1등을 도맡아 했던 듯 하다. 

방송을 통해 '판타 레이'라는 책을 썼고, 이 책이 베스터셀러라는 이야기를 듣고 주제와 소재도 딱 내 맘에 들었지만 학교 다닐 때 1등을 도맡아하던 선배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좀 알게 되는 기회가 될 듯해서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에 책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합리주의 시대의 과학과 인문학 또는 예술에 대한 관심이 적당히 있었던 탓에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방대하고 꼼꼼하게 추적하며 기록한 덕분에 섬세한 교양을 쌓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묵은 물건을 닦고 거기에 새로 세밀한 뭔가를 덧대는 즐거움이 가득한 책이라고 할만했는데, 해당 주제나 소재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아주 재미난 이야기 여행을 제공하지 않을까 싶다.

 

대중매체를 다뤄보며 '대중'이란 주제에 대해서 약간은 익숙한 덕에 '인쇄술'이 유럽을 기반으로 한 지식사회와 지성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고 뒤이어 카페문화와 살롱문화를 통해 지식이 보편화되고 대중화 되는 한편 역동적이면서도 심오화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데, 이는 디지털혁명 시대에 '기하급수적인 성장(exponential growth)'이 떠올랐다. 피터 디아만디스의 '여섯가지 "디(D)"'에서 디지털화를 통해 대중화로 이어진다는 그의 지적은 거의 정확히 인쇄술 이후 지식의 대중화에 따라 산업혁명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에 대한 흐름과 일치한다.

 

우리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세종대왕은 대중적인 소통 방식을 이루기 위해 '한글'을 창제했는데, 낡은  '사대'라는 이념에 빠져 비약적인 성장을 못보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한글은 이미 인쇄술을 갖고 있던 우리에게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어마어마한 선물이었지만, 기득권은 언제나 '늘 이대로'가 자신들이 누리던 것들을 안정되게 누릴 수 있기에 거세게 반발한 것 아니겠는가?

 

'판타 레이'에서는 유럽이 과학적으로 '주철'을 잘 다루게 되고, '자기'를 구울 수 있게 되는 과정을 통해 '동아시아'의 쇠를 다루는 기술과 자기를 다루는 기술을 극복하게 되었다고 지적하는데, 이 때 주목할만한 것으로 '명'이 쇠약해진 틈을 타서 유럽의 무역상들이 대안으로 일본을 택했다고 한다. 이 역시 낡은 '이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활발히 유럽과 소통했다면 일본보다 일찍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더욱 부강한 나라로 바뀔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이념'이 중요하고, '이념'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얼뜨기 사악한 기득권이 어떻게 나라를 망치게 되는 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홍범도 장군'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는 얼치기 '이념주의자'들의 행보를 보면 빛나는 한글과 인쇄술과 도예술을 갖고도 남 좋은 일만 시키고 결국 왕따되어 망하게 된 조선시대 '사대주의자'들 보다 훨씬 더 사악하고 무식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주관적인 느낌과 별개로 이 책 '판타 레이'는 과학을 기본으로 문명을 읽어낼 교양을 익히기에 매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