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재판의 승인과 집행

2021. 6. 25. 15:20법 이야기

어느 신문의 만행(?) 덕분에 갑자기 '외국 재판의 승인과 집행'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페이스북에 떠도는 미국 변호사의 이야기가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가 잔뜩이어서 더더욱 정리를 해야겠다 싶습니다.

 

헤이그재판협약의 간단한 이해

헤이그재판협약은 정확히는 '민사 또는 상사문제에 있어 외국 재판의 승인과 집행에 관한 2019년 7월 2일 협약(Convention of 2 July 2019 on the Recognition and Enforcement of Foreign Judgments in Civil or Commercial Matters)' 을 말합니다.

 

국가간의 계약(?)을 '조약'이라고 하는데, 조약은 양자간 조약과 다자간 조약이 있습니다.

 

마치 각서, 합의서, 약정서, 협의서 등으로 이름을 짓는다 하더라도 그 내용에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면 계약인 것처럼 '협약', '의정서', '조약', '협정', '선언' 등 어떤 이름을 갖더라도 각 국가간 권리 및 의무 규정을 담고 있으면 '조약'이라고 합니다.

 

헤이그재판협약은 헤이그국제사법회의(HCCH: Hague Conferenc on Private International Law, Conférence de La Haye de droit international privé)에서 채택한 수많은 협정 중의 하나(41번째)입니다. 위 링크를 따라가보면 아직 효력을 띠고 있지 않다고 되어 있습니다.

 

조약은 외교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 또는 위임을 받은 외교부장관 등이 서명(Signature)을 하는 것으로 곧바로 국내법적 효력을 발휘하지 않습니다. 비준(Ratification)을 거쳐야 합니다. 우리 헌법에서는 제6조에서 조약의 효력을 인정하면서도 제60조에서는 일정한 조약에게 대통령이 비준을 하려면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제60조  ①국회는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중요한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우호통상항해조약,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강화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ㆍ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②국회는 선전포고,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또는 외국군대의 대한민국 영역안에서의 주류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헤이그재판협약은 사법주권의 제약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특히 국회 동의와 대통령의 비준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2021년 6월 25일 현재, 헤이그재판협약은 서명한 나라가 '우루과이,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등 세 곳에 불과합니다. 어느 나라도 국내에서 비준 절차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헤이그재판협약'만 거치면 된다는 이야기는 터무니 없습니다. 대통령의 '비준'과 국회의 '동의'는 커녕 아직 '서명'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외국 재판의 승인과 집행에 대해 고려할 사항

1. 사법주권

재판을 받을 권리와 재판에 따른 집행력은 기본권과 한 국가의 주권에 대한 아주 중요한 사항입니다.

외국에서 제대로 재판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쉽사리 외국재판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은 자국민의 보호와 사법주권을 포기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상당한 예로 "대법원 2018. 11. 29., 선고, 2013다67587, 판결"이 있습니다.

 

미쯔비시의 제2차 세계대전 강제징용에 대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에 대한 대법원 판례입니다. 우리가 검토하려는 외국재판의 승인과 집행에 대한 쟁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피고 미쯔비시와 그 법률대리인이 이미 이 사건이 일본에서 패소판결을 받았으므로 해당판결을 승인해야하고, 승인하게 되면 동일한 사건에 대한 재판을 청구하는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법원은 승인해야할 이유가 없다고 답을 합니다.

 

대법원의 판단여부가 타당한지는 법률적으로 따져볼 여지가 있겠으나, 사법주권에서 외국의 재판을 함부로 승인하는 것은 굉장히 조심해야 합니다.

 

2. 재판받을 권리

우리는 헌법상 재판을 받을 권리를 인정하는데, 외국에서 재판은 해당 국가 법에 대한 이해가 어렵고 재판에 접근이 어려운 등의 사유가 있어서 재판받을 권리를 심각히 침해당할 우려가 큽니다. 민사사건의 경우는 특히 대부분의 국가가 당사자주의 또는 변론주의를 띄고 있어서 적극적인 변론이 없다면 사실과 다른 재판이 발생할 우려가 매우 큽니다.

 

이는 재정상태라는 우연한 사정에 따라 재판이 사실과 다른 결론을 띠고 억울함이 발생할 우려가 있습니다.

 

따라서 헌법상의 기본권에 비춰서도 외국재판의 승인과 집행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 밖에도 외국 재판의 승인과 집행에 대해서 신중히 해야할 까닭은 넘쳐나겠지요.

 

외국재판에 대한 우리 민사소송법의 규정과 대법원의 태도

우리 민사소송법은 제217조와 제217조의2에서 다음과 같이 해당 문제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제217조(외국재판의 승인) ①외국법원의 확정판결 또는 이와 동일한 효력이 인정되는 재판(이하 “확정재판등”이라 한다)은 다음 각호의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승인된다.  <개정 2014. 5. 20.>
  1. 대한민국의 법령 또는 조약에 따른 국제재판관할의 원칙상 그 외국법원의 국제재판관할권이 인정될 것
  2. 패소한 피고가 소장 또는 이에 준하는 서면 및 기일통지서나 명령을 적법한 방식에 따라 방어에 필요한 시간여유를 두고 송달받았거나(공시송달이나 이와 비슷한 송달에 의한 경우를 제외한다) 송달받지 아니하였더라도 소송에 응하였을 것
  3. 그 확정재판등의 내용 및 소송절차에 비추어 그 확정재판등의 승인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아니할 것
  4. 상호보증이 있거나 대한민국과 그 외국법원이 속하는 국가에 있어 확정재판등의 승인요건이 현저히 균형을 상실하지 아니하고 중요한 점에서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을 것
  ② 법원은 제1항의 요건이 충족되었는지에 관하여 직권으로 조사하여야 한다.  <신설 2014. 5. 20.>
[제목개정 2014. 5. 20.]
 제217조의2(손해배상에 관한 확정재판등의 승인) ① 법원은 손해배상에 관한 확정재판등이 대한민국의 법률 또는 대한민국이 체결한 국제조약의 기본질서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경우에는 해당 확정재판등의 전부 또는 일부를 승인할 수 없다.
  ② 법원은 제1항의 요건을 심리할 때에는 외국법원이 인정한 손해배상의 범위에 변호사보수를 비롯한 소송과 관련된 비용과 경비가 포함되는지와 그 범위를 고려하여야 한다.
[본조신설 2014. 5. 20.]

만약에 미국에 있는 모 언론사가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심각하게 명예를 훼손하는 기사를 작성했다고 한 일이 있다고 한다면, 제217조에 따라 '상호보증'을 검토해야겠습니다.

 

2021년 6월 25일 현재, 우리나라는 양자간 또는 다자간 조약으로 외국재판의 승인과 집행을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연방국가차원에서 이런 상호보증을 한 적도 없기에 각 주별로 외국법원의 재판에 대한 인정여부가 핵심입니다. 1970년대에 '네바다'주와 상호보증을 부정한 대법원 판례를 제외하고, '뉴욕', '캘리포니아', '텍사스', '매사추세츠', '미네소타' 주 등에 대해서는 상호보증을 인정해왔습니다(사법정책연구원: 외국재판의 승인과 집행에 관한 연구. 2020. 3, 클릭하면 내려받음).

 

따라서 이 사례는 외국법원의 재판이 있는 경우 승인에 대해서는 '헤이그재판협약'이 아닌 '민사소송법'의 규정에 따라서 그 승인여부가 결정되어야 합니다.

 

솔직히 그 미국 변호사님이 왜 이상한 법리를 동원해서 마치 그것이 사실인양 함부로 말하는 지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해서 마구 퍼뜨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승인이 가능은 하다고 봐야겠지요.

 

승인여부에 앞서는 당자사의 확정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졌습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하고 보도한 언론이 미국에 있는 한국의 지사(Branch)인지와 자회사(Subsidiary)인지에 따라서 국내에 외국재판의 승인이 가능한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당사자에 관한 검토가 매우 중요한데요.

 

미주지사인 경우라면 '지사(Branch)'는 법인격이 따로 있지 않으므로 위법한 행위를 저지른 최종 책임은 본사에 있습니다. 말 그대로 '지사'는 늘어진 팔에 해당하므로 그 팔의 주인을 찾아서 몸통인 한국의 본사에게 책임을 최종적으로 귀속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자회사(Subsidiary)'에 해당한다면 이는 전혀 다릅니다. 독립된 법인격이고 해당 자회사는 미국의 법인이므로 모회사에 대해서 위법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연대책임을 지게할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공동으로 위법을 저질렀다는 등의 사정을 확인받지 않는 이상 국내에 해당 재판의 위험을 갖고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지사가 말 그대로 '지사'가 맞는 지 아니면 '자회사'를 그냥 지사라고 부르는 것인지 확인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일반 사업에 있어서도 '지사'와 '자회사'를 구별해야 하는 것처럼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